일하는 공간을 만드는,

청년들의 일하는 공간, 청년청

청년들의 일하는 공간, 청년청

청년청

안녕, 청년청!

청년청: 일하는 공간, 세 번째 이야기

퍼블리에서 <공간 기반 창업 가이드>를 거의 완성한 즈음에 자기소개를 새로 써야 했어요. 마지막에 어떤 말을 덧붙이면 좋을까 고민하다가 괄호 치고 “다음에는 어떤 일하는 공간을 주제로 퍼블리 리포트를 쓸지 고민중입니다 🙂” 라고 적었습니다. 그때는 이렇게 빨리 다음 주제를 찾게 될 줄은 몰랐어요. 물론 서울시 용역을 맡게 될 줄은 더 예상을 못 했지요. 하지만 연구 주제가 너무 재미있어서! 거절할 수가 없었습니다.

청년청

서울혁신파크 22동, 청년청

서울혁신파크는 어딘가 대학교 캠퍼스 느낌이 있어요. 부지가 3만 평이나 되어서 일 수도 있고, 1970년대에 계획된 공공기관(질병관리본부)이기 때문일 수도 있습니다. 건물이 너무 빼곡하게 들어서 있지 않은 것도 좋고, 오랫동안 한자리에서 자란 큰 나무들이 많아서 좋아요.

청년청은 서울혁신파크에 있는 32개 건물 중에서 제가 제일 좋아하는 건물입니다. 친구들을 만나러 몇 번 방문하고 청년청의 매력에 푹 빠져서 이런 글을 쓰기도 했습니다. 서울혁신파크가 대학교 캠퍼스라면 청년청은 동아리방 같기도 합니다. 입주단체 이름만 봐서는 뭐 하는지 알 수 없어서 더 흥미로워요.

청년청

청년청

청년청 1층 로비 / 2층 입주공간 입구

 

세상에서 가장 바쁜 청년청 입주팀 만나기

이번 연구에서 가장 중요하고 어려웠던 부분은 청년청 입주단체와 인터뷰 약속을 정하는 일이었어요. 54개팀은 각자 입주공간에 방문하는 시간과 요일이 다르고, 저 뿐만 아니라 사진작가, 다른 인터뷰어까지 시간을 맞춰야 했으니까요. 그래서 아래와 같은 내용으로 메일을 작성하고, 구글 스프레드시트에 방문 일정을 정리했습니다.
* * *
[청년청] 아카이빙 연구를 위한 인터뷰+사진 촬영 요청 및 스케쥴 정리

청년청 입주단체 여러분, 안녕하세요.
공간디자인 스튜디오 105-10을 운영하는 김 란 입니다.
이번에 서울시와 함께하는 <2019년 청년활동공간 청년청 아카이빙 및 분석>을 맡게 되었습니다.

청년청 교류회에서 인사드린 분도 있지만, 모두 뵙지는 못해서 이렇게 인사드립니다. (발표자료 링크)
교류회에서는 ‘연구원’이라고 소개 받았지만, 대학교 또는 연구소 소속은 아닙니다 ㄷㄷ

저는 일하는 공간을 만드는 디자이너입니다.
오피스 디자인, 창업공간을 디자인하면서 일하기 좋은 공간에 관심을 갖게 되었어요.
좋은 오피스를 찾아가서 인터뷰하고, PUBLY 오피스 디자인 가이드공간 기반 창업 가이드를 작성했습니다.

이번 연구에서는 아래 내용을 연구하고,
입주단체를 대상으로 인터뷰+사진 촬영을 하고, 소책자를 제작합니다. (예쁘게 만들거예요!)

* 청년의 성장방식에 맞는 청년공간 구축 과정
* 지난 5년 동안 공간과 청년의 상호작용 분석
* 청년의 입주로 인한 공간의 유의미한 변화 기록
* 청년들의 성장과 경로 탐색을 위한 공간 지원의 필요성 확인

청년청의 최대 매력은 다양한 사람이 모여있는 것이 아닐까요?
그래서 방 하나하나에서 어떤 사람들이 무엇을 위해 하루하루를 보내는지 기록하는 것에 큰 의미가 있다고 여겨집니다.

만남이 어려운 경우 서면인터뷰도 가능합니다. 하지만 주인 없는 공간을 제가 들어가게 되면 아무래도 마음이 불편할 것 같아서요.
딱 1시간만 시간 내주시길 부탁드려요. 가능하면 현재 입주해 계신 모든 분을 만나서 이야기를 듣고 기록할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모든 일은 기록하지 않으면 언젠가는 없었던 일이 되는 것 같아서 더 그렇습니다.

잡지 어반라이크UrbanLike에서 101명의 생활공간을 찍었던 김보리 작가님이 사진을 담당합니다. (포트폴리오 링크)
공간 사진 속에 꼭 출연하셔야 하는 것은 아니지만, 전문작가에게 사진을 찍히는 경험은 한 번쯤 추천해 드리고 싶어요.
(제 프로필 사진의 대부분은 이 분이 찍어주셨어요. 너무나 마음에 듭니다!!)

(후략)

청년청

김보리 작가의 콘아이스크림 스튜디오

* * *

청년들의 해볼 만한 공간

 

청년청 입주팀과 인터뷰를 시작하면, 가장 처음에는 제 소개를 합니다. 제가 이번 연구를 맡게 된 계기, 개인적으로 어떤 의미가 있는지 3-5분 정도 말씀드려요. 청년청 입주팀의 공간은 하나하나 다르기 때문에, 그 때마다 다른 방법으로 자기소개를 하게 되었습니다. 크게 3가지로 정리할 수 있겠네요.

 

1. 나만의 공간이 있다는 것

 

“작업실이 없으면 공강 시간에는 어디서 뭐 해?”

‘청년청은 대학교 동아리방 같다’고 적었지만, 저는 사실 동아리방에 있었던 적이 거의 없어요. 아쉽게도 제가 다녔던 대학교는 동아리 활동이 그다지 활발하지 않았거든요. 친구들이 대부분의 공강 시간을 동아리방에서 보낸다는 이야기를 했을 때 놀랐던 기억이 납니다. 동아리 활동은 부러운데, 작업실이 없는 건 상상할 수가 없어서요!

 

청년청

1x년 만에 발굴한 200x년의 작업실 모습: 제 기억보다 훨씬 지저분하네요…

 

사진만 보면 쓰레기장과 큰 차이가 없어 보이지만, 그 당시에는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제 공간이었습니다. 깨어있는 대부분의 시간을 여기에서 보냈습니다. 과제를 하고, 책을 읽고, 시험공부를 하고, 동기들과 배달음식을 주문해서 먹고, 답 없는 이야기를 밤새 나눴습니다. 같은 층에 샤워실이 있고, 아래층에는 매점과 식당이 있었기 때문에 24시간 이상 건물을 벗어나지 않은 때도 많았어요. 의자 2개 붙여놓고 자는 게 불쌍했는지 라꾸라꾸를 빌려주던 선배, 동기도 기억납니다. 새벽에 청소하러 오신 여사님의 짠한 눈빛, 그리고 쓰레기인지 작품인지 알 수 없어서 곤란해하시던 표정도 잊을 수가 없지요.

 

집에 가도 내 방이 없는데, 학교에는 나 혼자 쓰는 책상이 있어서 그저 행복했어요. 제 살림을 마음껏 늘어놓고, 좋아하는 사진과 포스터를 벽에 붙여 놓을 수 있어서요! 제가 20대를 조금이라도 충실하게 보냈다면, 그건 전부 작업실 덕분이라고 생각합니다.

 

졸업하면서 가장 아쉬웠던 것도 작업실이었습니다. 학교에 있던 제 살림을 정리하니 큰 상자 12개가 꽉 찼는데, 부모님 집에는 풀어놓을 곳이 없었어요. 일부만 꺼냈는데도 마음에 드는 위치에 놓을 수는 없었습니다. 나머지 상자들을 베란다, 지하 창고에 보관하는 동안 상당히 마음이 불편했습니다. 약간 과장하면 항상 정신이 흩어져 있었어요. 항상 손 닿는 곳에 제 나름대로 분류해서 정리된 책과 참고자료, 제 취향의 필기도구, 칼과 커팅매트 등의 각종 작업 도구가 있었던 시절이 그저 그리웠습니다. ‘뭔가 하려면 일단 내 공간부터 만들어야겠어!’ 결심한 시기이기도 합니다.

 

청년청

학교가 그리울 때는 영화 <족구왕>을 다시 봅니다

 

2. 사람은 공간을 만들고 공간은 사람을 만든다

 

105-10은 제가 일하는 공간의 주소이자 회사 이름이에요. 구글에 105-10이라고 검색 했을 때, 95가 나오는 것을 보면서 “아 회사 이름 잘못 지은 것 같다.” 싶고, 저와 몇 년 동안 일을 같이 하는 사람들마저 “그런데 회사 이름이 뭐였죠? 1로 시작했던 것 같은데?” 같은 말을 할 때마다 “이상한 회사 이름이라서 죄송합니다.” 사과하고 있어요. 심지어 나라장터 등록을 하려고 보니 특수문자가 입력이 안 되서 새롭게 좌절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105-10은 저한테 의미있는 숫자라서 아직 회사 이름을 바꾸지 못하고 있습니다. 제가 105-10이 아닌 다른 장소에 작업실을 만들었다면, 저는 전혀 다른 일을 하고 있는 다른 사람이 되었을 것 같아서요. 독서모임, 건축수업 같은 클래스를 진행하고, 직접 고치고 꾸민 에어비앤비를 운영하고, 에어비앤비 손님으로 만났다가 친구가 되고, 건물을 계속 고치다가 괜찮은 시공회사를 알게 되서 같이 일하게 되고, 같은 건물에서 지내는 사이였다가 공간 디자인을 맡게 되는 등의 사건들이 다른 장소에서도 일어났을지 확신할 수가 없어요. 저한테는 이 모든 사건들이 소중해서 더 그렇습니다.

 

청년청

새삼 충격적인 6년 전 모습과 어제 찍은 105-10

 

3. 창업과 취업 사이, 창직

 

#좋아하는 일로 먹고 살기 #창업과 취업 사이, 다른 삶의 방식 #뭐든 시도해 볼 수 있는 실험 공간

 

청년청 2019년 신규입주단체 모집 글에는 이렇게 적혀있어요. 그리고 작지만 독립된 사무공간, 새 것 같진 않지만 쓸모 많은 층별 넓은 공유공간, 입주단체 간 따로 또 함께하는 분위기. 최장 4년의 입주기간과 저렴한 임대료(보증금 없음!) 그리고 모집 대상은 ‘좋아하는 일을 자기가 원하는 방식으로 시도해보고 싶은 청년 혹은 단체’, ‘혼자 작업하지만 네트워크가 필요한 청년 혹은 단체’ 입니다.

 

저는 꽤 많은 숫자의 업무공간, 그 중에서도 코워킹스페이스를 방문하고 사용했습니다. 요즘 말이 많은 wework, 패스트파이브, 스파크플러스, 시티큐브, 서울창업허브, 마루180, 디캠프, 네오플라이 등이 대표적입니다. 위치도 가격도 장단점도 다릅니다. 하지만 제가 창업을 준비하던 과정에서 지원받은 사무실은 항상 이런저런 조건이 있었습니다. 의무적으로 교육에 참석해야 했고(개인사업자, 법인사업자의 차이에 대한 수업은 3번 넘게 들은 것 같네요), 일주일에 몇 번 이상 무조건 출퇴근 해야 하는 곳도 있었습니다. 작성해야 하는 서류가 너무 많아서 본업에 지장이 있을 정도 였어요. 서둘러 사업자등록을 해야 하는 분위기도 이해가 되지 않았습니다. 사업자등록을 한다고 해서 바로 매출이 일어나는 것도 아닌데… 창업자 숫자가 하나 늘어날 수는 있겠지만, 그게 무슨 의미가 있나요? 제가 하는 일에 집중하고 싶어서 공간을 마련했는데, 각종 네트워킹 행사에 불려다니는 것도 너무 싫었습니다. 가끔 방문객이 몇 십명 찾아와서 기념사진을 찍는 것도 당연히 반갑지 않았어요.

 

그래서 저는 청년청이 좋았던 것 같아요. 가만히 내버려두는게 도움이 될 때가 있으니까요. 집중하고 싶은 일을 찾는 데에도 시간이 걸립니다. 그 일로 먹고 살기 위해서는 더 많은 시간이 필요한데, 공간이 있으면 버티는 데에 확실히 도움이 됩니다.

<동해안 공간기반 청년창업 코디네이터>를 맡아서 강원도를 드나들면서 만난 사람들에게 종종 청년청 이야기를 했어요. 그 때마다 반응은 “부러워요!”, “너무 가보고 싶어요!!”, “좋은 건 서울에만 있는 것 같아요. 여기에도 있었으면.. ㅠㅠ”

 

청년청

‘청년’은 대상이 아니라 사회를 들여다보는 방법, 해결해가려는 시도에 가깝습니다. 2016 청년주간

청년청 연구는 진행중입니다

 

50개팀의 일하는 공간을 방문하고, 인터뷰를 진행하는 일은 역시 쉽지 않습니다. 최근 청년청 관련 이슈들이 있어서 더 복잡한 마음이에요. 하지만 이럴 수록 저는 제 할 일을 열심히 해야겠지요. 12월에는 최종보고서와 함께 청년청 연구 후기를 작성해보겠습니다 🙂

청년청

청년청 어딘가의 구석에서 찍은 사진